서울대학교 유교의식 1

2016. 4. 21. 23:09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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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례의 의미



고인돌, 피라미드, 사당 이 세 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모두 죽은 사람을 기리기 위한 의도로 만든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태곳적부터 죽은 이후의 삶, 사후 세계는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였고, 특정한 의례를 통해 죽은 자들이 내세를 잘 영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죽은 사람에 관련한 의례는 시기마다, 또 지역마다 모두 달랐지만 우리는 이런 제사와 관련된 예절을 모두 통틀어 제례라고 부른다.




2. 우리나라의 제례의 변천과정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불교가 전파된 이후로, 대체로 불교식 제례를 따랐다. 왕족들과 몇몇 유력 귀족들은 돌무덤이나 널무덤 같은 거대한 고분들을 만들었던 것에 반해, 일반적으로 민간에서는 불교식 화장이 유행하였다. 불교식 제례는 불교의 절정기인 고려시대를 맞이하여 전성기를 꽃피우는데, 팔관회, 연등회 같은 대규모 국가적 불교행사를 주최하는 한편, 개인적인 상례나 제례 역시 사찰에서 불교식으로 거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사람이 사망하면 시신을 화장한 뒤, 뼈를 수습하여 작은 관에 넣어 매장하거나, 작은 단지에 담아 절에 보관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 숭유억불 정책을 취하면서 제례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불교식 화장방법은 매장문화로 바뀌었고, 가묘와 사당 설립 운동이 추진하면서 제사방식을 점차 유교적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중기까지 여전히 불교식 제례방법이 주도적임을 중종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은 제례가 완성된 것은 18세기 이후이다. 이 시기에 점진적으로 보급되었던 성리학적 질서가 사회전반에 걸쳐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또한, 부계의 중심의 종법 질서가 확립되면서 아들, 딸 상관없이 돌아가며 제사지내는 윤회봉사에서 장자(혹은 적자)를 중심으로 제사를 지내는 현재의 장자단독봉사로 바뀌었다. 또한 주자가례에 따라 의거한 제례방식과 4대 봉사 역시 이 시기에 확립이 된 전통으로 현재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3. 제례의 종류


제례는 크게 사시제(四時祭), 녜제(禰祭), 기일제(忌日祭), 묘제(墓祭)로 나뉜다. 사시제의 사시는 4개의 계절의 가운데 달인 음력 2월, 5월, 8월, 11월을 말하는 것으로 이 때 고조부모부터 증조부모, 조부모까지 사대 조상 및 부위에 합동으로 제사 지내는 것이다. 


 주자의『가례』에서는 사시제를 가장 중요시 여기었지만, 조선에서는 사시제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조선의 대부분 가정들은 일 년에 4차례 거행하는 사시제를 지내기보다는 설, 단오, 추석 등의 명절과 맞추어 제사를 지내었다. 



녜제는 글자 그대로 아버지의 사당에 대한 제사이다. 계추(가을의 마지막달-음력9월)에 부친께 혹은 부친뿐만 아니라 모친에게 정침(正寢)에서 제사를 올린다. 녜제는 몇몇 서인(庶人)들과 소수의 몇 명이 거행했을 뿐, 사시제와 마찬가지로 절대 다수의 조선 사대부들과 백성사이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기일제와 묘제, 이 두 개가 조선에서 가장 많이 행하여진 제례 문화이다. 기일제는 휘일제라고도 불리며 4대 조상들이 돌아가신 날 새벽녘에 돌아가신 분께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재계, 설위, 진기, 성생, 제구, 진설의 준비과정과 참신에서 철, 준에 이르는 절차를 거쳐 제사를 지낸다. 



 묘제는 묘에 지내는 제사로 주자의『가례』에 따르면 4대에 한해서 3월 상순의 날에 택일 하여 하루 전에 재계를 하고, 제수품을 갖추며, 청소를 한다.(4대 이후의 조상들은 음력 10월 1일에 따로 제사 지낸다.) 그 후, 자리를 펴고 찬품을 진설하고 차서대로 선 후 참신례 강신례 초헌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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