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제석도량

2016. 4. 23. 11:17카테고리 없음

반응형

1.제석도량 소개






 1.1 불교에 수용된 호법선신, 인드라에 대하여




제석도량(帝釋道場)은 제석천(帝釋天)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불교 의례를 일컫는다. 제석천은 원래 『리그 베다』 베다는 리그베다, 사마베다, 아주르베다, 아타르바베다 4종이 있는데 각 베다는 삼히타, 브라마나, 아란야카, 우파니샤드 4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에 나오는 신인 ‘인드라’로 불교에 수용된 호법선신(護法善神)을 일컫는다. 4종의 베다 중 가장 오래된 『리그 베다』에는 1028개의 찬가로 구성되어있는데,


 그 당시의 인도 사람들은 신들에게 그 찬가를 바쳐 건강, 장수 등의 복을 기원하였다. 이 중 가장 많은 찬가가 바쳐진 신이 그리스의 제우스, 북구신화의 토르와 비교되는 뇌정(雷霆)의 신 ‘인드라’이다. 인드라는 아리안들의 적을 공격하는 아리아의 전사로서 천둥과 번개로 어둠을 몰아내어 사람들에게 빛을 가져오는 선신(善神)으로 숭배되었다. 후에는 천지를 장악하고 그의 강력한 무기 ‘인다라망’ 제석천궁에 장엄되어 있는 그물로 수많은 보배 구슬로 이루어져 있어 흔들면 서로 빛을 발하면서 함께 어우러져 적을 물리친다.



으로 적을 물리쳐 베다 신들 중 가장 권위 있는 신으로 일컬어졌다. 나중에 인도의 힌두교가 불교에 영향을 많이 미치면서 불교의 신앙의 대상에 인도의 신들이 대거 유입되었는데, 이 때 인드라도 들어오면서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인드라는 범어로 Śakra로, 음역하여 석제환인다라, 석가제바인다라로 쓰던 것을 줄여 제석천이라 하였다. 



 불교의 세계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는데, 인드라는 그 정상에 있는 도리천이라는 하늘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아함경』에서는 인도의 신으로 불교에 들어온 인드라에 대해 많은 것을 전하고 있는데, 『장아함경』에 의하면, 석가가 마가다국 왕사성 동쪽 암바라 동산에 있는 큰 바라문 촌락 북쪽의 제석암에 대중들과 함께 계실 때, 제석이 도리천의 권속들을 이끌고 와서 석가에게 법을 묻고는 해탈을 얻어 죽을 때까지 삼보에 귀의하여 우바새의 계를 지킬 것을 서원하였다고 한다. 인드라에서 수용된 제석천은 석가의 귀의하고 나서 불교 최고의 호법신이 되었으며,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항상 도리천의 권속을 이끌고 와 호위하였다고 한다. 또한 베다의 33신은 불교로 편입되면서 33천(天)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장아함경』에서는 33개의 천을 자세히 설명하며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을 수위로 하였다. 따라서 다른 어떤 제천보다 신앙 시 되는 곳에 살고 있는 제석천은 그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권속을 이끌고 불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제석천은 다른 제천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의 권속들을 파견하여 선행을 저지르는 자, 악행을 저지르는 자를 보고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제석천의 모습이 경전의 전례를 통하여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이는 『삼국유사』에서도 확인 할 수 있다.


1.2 신라의 제석신앙 수용


『삼국유사』에는 『아함경』이 언급되어 있다. 불교가 공인 된 후 신라의 승려 원광은 중국에서 유학을 하며 4종의 아함을 섭렵하여 하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였고, 특히 제천들 가운데 호법신으로 신앙 시 되고 있는 제석천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 인식되고 있다. 진흥왕이 경전 속 전륜성왕의 이미지를 빌어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냈던 것에서 진흥왕 대부터 『아함경』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다고 보며 이것이 원광과 무관하지 않는다고 본다. 다른 어떤 경전도 수미산 세계와 제석에 대한 내용을 『아함경』보다 상세하고 극적으로 다룬 것은 없기 때문에 『아함경』에 대한 이해가 제석신앙의 기반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서 신라의 조상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신라의 귀족은 모두 천신관념을 갖고 있었고, 이는 신라 왕권이 귀족을 누르고 세력을 강화하고자 할 때 한계에 부딪히게 하였다. 따라서 신라 왕권은 기본적 지배이데올로기인 천신관념을 대체 할 다른 관념체제의 제도장치로서 불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이는 천(天)을 포함한 사람들이 윤회의 굴레에서 허덕이게 되고 왕권인 불(佛)만 거기서 벗어나 초월적 존재가 된다고 설명하였으며, 이로서 왕권이 귀족들보다 우월함을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라의 전체 구성원들에게 이득이 없다면 불교가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자리 잡기 어려우므로, 신라 왕권은 불교의 통합 기능을 생각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진흥왕은 제석천이 가장 잘 드러난 경전 속의 전륜성왕이 한 행위를 지향하였고, 진평왕은 신라 왕실을 부처 가문으로 삼아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는데, 여기서 현실적으로 실천하게 된 것이 바로 제석신앙이다.


신앙과 그 의례는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 그 시대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제석신앙을 기반으로 한 불교를 그 시대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삼으며 왕권을 강화하였고, 내제석궁을 설립하게 되었다. 여기서 내는 궐내를 의미한다. 진평왕이 제석신앙을 실천하게 된 것은 신라 왕실을 석가왕실과 동일 시 하였고, 제석은 세계 중심에 위치한 수미산의 정상에 있는 도리천에서 부처를 호위하는 호법선신이므로, 마치 왕실이 제석의 호위를 받는 듯  한 느낌을 주어 왕권을 강화시키고 부처와 같은 존재로 자연스럽게 부각시키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1.3 고려 시대의 제석도량


고려 왕실 문종 대 이르러 제석도량이 개설되었다. 왕실 내에서는 제석도량을 정월에 개최하였고, 내전에서 보통 7일 동안 거행되었다. 제석도량은 국내 천변이 있거나 혹은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 열린 호국을 목적으로 하였다. 제석 자체가 적군을 항복시키고 아군의 용기를 복돋우는 전투신이므로 호국적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도량을 실시 한 것이다. 대외적으로 고조되는 위기 속에서 호국을 기원하는 것 이외에 제석 신앙은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수용되었는데, 이는 만수무강, 즉 장수를 기원하는 신앙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장수를 기원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하고 원하는 것으로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가 대중성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자연스레 전국적으로 수용되었다. 더욱이 지겸이라는 사람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제석에게 자신의 수명을 어머니의 수명으로 채워달라고 빌자 어머니가 살아났다는 이야기 등을 통해 더욱 절대적인 신으로 신앙 받게 되었다. 법회를 열어 제석불을 놓고 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제석도량은 단순한 호국도량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천신사상을 매개로 하여 백성들 사이에 깊게 자리매김 하였다고 볼 수 있다.


2. 감상


한국은 고대 농경사회부터 토속신앙으로 하늘의 신을 존경하고 공손히 하는 천신신앙이 있었다. 귀족을 대상으로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였던 신라시대 때의 진평왕은, 자신의 왕실을 강화하기 위한 명목으로 제석 신앙을 택하였는데, 필자는 이 제석 신앙을 쉽게 택할 수 있던 이유가 바로 백성들 사이에 뿌리 깊게 자리 잡힌 천신 신앙에 기반 한다고 생각한다. ‘삼히타’에서 신들에게 바치는 많은 찬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그 신 가운데 가장 우상시 되었던 뇌정의 신 ‘인드라’, 즉 ‘제석’은 수많은 사람들의 기복의 대상이 되었고, 따라서 천신 신앙의 본래 목적인 기복이 제석 신앙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백성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고, 더욱이 신앙이라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의식 세계를 반영하여 상징적이고 절실하게 표현될 수 있기 때문에, 신라 왕실은 불교와 제석 신앙을 당시 백성들의 민심을 사로잡아 쉽게 지배 이데올로기로 내세울 수 있었고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제석 신앙은 위기 정세 속에서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형태와 백성들의 기복 신앙으로 고려 시대 때 제석 도량이라는 일종의 불교 의례로 정착이 되었지만, 애초에 제석 신앙을 왕권의 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들여왔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 필자는 첫 번째 감상의 주안점으로 종교나 사상이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되 뇌여 보게 되었다. 현재는 국가와 종교의 결합이 유익하지 않고 국가 권력과 연결이 되었을 때 종교가 타락하고 부패될 수 도 있다는 위험을 수반하고 있어 국민의 국가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발생시키고 이것이 나아가 국가 자체의 파괴를 이끌 우려가 있다고 보아 국가와 종교는 분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정교 분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신라 왕실은 오히려 백성들을 설득시키고 이끌어 나가며 더불어 귀족을 대상으로 왕권도 강화시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법으로 제석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불교라는 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당시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며, 또한 제석 신앙 자체가 백성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복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왕권에 대하여 불만이 없었던 것인지, 혹은 조금이라도 불만을 표출했는지, 했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하였는지 조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의 정교분리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지 궁금증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필자는 두 번째 감상의 초점으로 인도인들이 가장 오래되고 중요시하는 경전인 베다에서 왜 ‘인드라’라는 신을 가장 숭배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왜 『리그 베다』의 1/4이 인드라에 대한 찬가로 쓰여 있고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이 될 수 있었는 지 궁금하였다. 또한 사람들이 인드라라는 존재를 찬양을 하였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인간의 속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먼저 『리그 베다』에 묘사된 인드라라는 신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는 늙지 않는 존재로서 언제나 젊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싸움을 잘하는 황소를 닮았다.
둘째. 그에게는 공포가 없다. 그러나 질투가 매우 많은 편이며 화를 잘 내기도 한다.
셋째. 윤리적인 면에서 매우 도량이 큰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찬양하며 떠 받들고 있다.
넷째. 지적인 면에서 매우 총명하고 신중하며 사리 판단이 옳아 아래 사람들에게 좋은 충고를 한다.



언제나 젊은 성인의 모습을 하고 있고 싸움을 잘하며 공포가 없으며, 또한 윤리적인 면에서 도량이 커서 사람들에게 조언을 많이 하는 인드라의 모습은 사람들의 찬양을 받기에 충분한 성격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또한 그는 굉장히 용맹하고 신들 중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었으며 사람들에게 어둠을 준다고 인식되는 악룡 브리트라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대상을 없애주었다고 생각을 하였으니 얼마나 찬양을 받았을지 짐작이 되는 바이고, 실제로 『리그 베다』에서는 그의 무훈을 거듭하여 칭찬하고 있다. 그런 용맹함과 동시에 위와 같은 성격에 있어 사람들에게 가장 믿을 수 있던 존재로 다가갔다고 생각이 된다. 또한 인드라가 불교에 수용되어 제석천으로 되고나서 적극적으로 정법의 유통과 수호를 위해 다른 제천들과는 달리 인간세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도리천에 머물러 있던 권속들과 사천왕을 매월 인간세계에 파견을 하였다는 점은 다르게 생각하여 사람들이 그를 간접적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도리천이라는 곳은 관념적인 어떤 다른 제천들보다 사람들이 머리 속에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가장 높고 경이로운 세게로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볼 때 인드라와 제석천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뇌정의 신이었다. 경외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에 모든 자연현상들 가운데서 뇌우에 비견할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마치 이것은 외경심과 동시에 대상에 대한 존경심으로 독일의 철학자 R.오토가 언급한 ‘누미노제 경험’과 같은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