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0. 01:33ㆍ카테고리 없음
2. 제례에 대한 감상
이번에 제례를 조사하려고 마음먹은 계기에는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의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평소에 유교에 대해서는 그것이 종교라기보다는 학문이나 사회, 문화적 구조나 체계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왜 이것이 ‘유교(儒敎)’ 즉 종교로 불리우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서양식 종교관에 익숙한 사고방식이 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모시고, 또는 많이 양보하여 여러 신을 모신다 해도 그들이 세상을 창조하고 주관하는 식의내용과 체계를 가진 것을 종교라 부르는 게 더 알맞다고 생각되었고 유교는 이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교적 의식인 제례에 대해서도 그것이 유교적 의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는 있지만 그보다는 그저 한국의 전통 가정문화의 일부분으로서의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고 여겨왔다. 스스로 집안의 장손이기도 하여 어릴 때부터 꾸준히 때마다 제사를 지내왔지만 어릴 때도,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제사 의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으며 그냥 기계적으로 제사에 참여해왔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한번 유교의 의례, 특히 제례에 대해 조사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제례에 대한 조사는 유교의 종교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해주었다.
유교와 제례에 대해 조사를 해보니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유교의 종교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앞의 조사에서 언급한대로 제례의 기본적인 의미의 바탕에는 신과 인간과의 소통이 깔려있음을 통해 그 종교성을 강조하는 입장, 그리고 그보다는 제례 역시 사회적 제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으로 유교의 종교성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입장들이 그 대표적인 두 갈래였다. 그저 초보적인 수준으로 조사를 행한 나로서는 이 둘의 입장에 어느 것이 더욱 맞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말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 이 두 입장의 경계가 그리 뚜렷이 나뉘어지는 지도 딱 잘라 판단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럼에도 이번조사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유교에서 충분히 종교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근거를 알게 되었다는 점들이었다. 물론 이때 언급된 종교성이란 것도 ‘서양적인 종교관’에 의지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단 유교 자체가 그저 사회적 제도나 학문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온 나에게는 유교 제례의 밑바탕에 신의 세계와의 소통이 깔려있고, 그것이 제례의 시행 절차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식으로 발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분히 새로운 유교의 면모를 느낄 수 있게 해준 계기였다.
그리고 좀더 생각해 볼 때, 전통적인 방식과 절차를 따른 제례의 모습을 보며 수업시간에 배운 미르치아 엘리아데의 ‘모든 실존적 위기에 대한 모범적 해법’과 ‘성과 속의 변증법’이라는 구절들을 떠올렸다. 제례는 조상신을 통해 신의세계와 인간을 연결시켜주고 그 안에서 단절된 내가 아닌 ‘연속적인 실체로서의 나’, ‘신의 세계와도 연결된 나’, 그리고 ‘사회적으로 같은 가족 구성원들의 중의 하나인 나’를 확인시켜 준다. 그러한 나는 동시에 나의 후손으로도 연결되는, 조상과 후손사이를 매개하는 중간자적 위치를 가질 것이고 세상과 고립된 존재가 아닌 세계 전체와 사회의, 가정의 중요한 일부분으로 역할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분명 꾸준히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시켜주고 나의 역할과 의미를 규정지어주어 나의 삶의 이유에 대한 유교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공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또한 주기적인 제례를 통한 신과의 소통이라는 과정의 재현과 반복은 때마다 사람들의 성(聖)이 드러나게 해주는 ‘성현’의 기능을 수행 할 수 있다고 여겨졌는데, 그렇다면 유교는 제례를 통해 볼 때 현대적 의미의 종교 정의와 관련 지어 생각해도 충분히 종교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아마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교의 종교성은 그것이 본래 없었다기보다는 세월에 따라 어쩔 수없이 약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반복되어 온 유교 제례는 그것이 유교적 질서 수립에 끼치는 사회적 기능의 의미가 확고해졌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종교적의미가 약하게 여겨진 측면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원래 유교의 의례는 관혼상제의 4가지 의례를 기본으로 수행되어져 왔으나 현재 관례는 사실상 사라지거나 성인의 날 행사 등으로 대체되었고 혼례 역시 완벽하게 서양식 풍습이 도입되어 폐백 등의 부분에서만 보조적 역할로 그것이 남아있을 뿐이다. 상례 역시 병원의 영안실 등에서 이루어지고 전통적인 유교식의 상례는 찾아보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그나마 종교와 상관없이 (기독교 등 몇몇 경우를 제외한) 다수의 가정에서 전승되고 있는 것이 제례인데 이마저도 주거나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 전통적인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유교에서 ‘의례’가 가지는 영향력 자체가 미미해지고 제례도 그저 의무적으로 치러야하는 의식의 하나로만 여겨지는 것이 바로 그 안에서 종교성을 계속해서 약하게 만든 원인인 것 같다.
유교의 종교성과 그 복원의 문제는 앞으로도 유교계에서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하는 측면이 아닌가 싶다. 이번조사를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제사를 지낼 때는 제사의식의 모든 과정이 새롭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