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영성체 예식 2

2016. 4. 20. 13:24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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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자신을 희생하고 스스로 성체가 되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이유는 일치를 위하여 즉, 함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예수의 첫째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모든 이가 한 형제로써 서로 돕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영성체 예식을 통해 천주교 신자들이 얻는 가르침이다.

 


초대 교회에서는 세례성사의 마지막에 첫영성체를 했다. 중세에는 성숙성 문제로 유아의 영성체가 금지되었다. 1215년, 4차 라떼란 공의회에서는 이성을 쓸 수 있는 어린이에게 첫 고해성사와 함께 첫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결정하였다. 그러나 얀세니즘 등의 영향으로 실행되지 못하다가, 20세기 초에 와서야 비오 10세 교황에 의해 주창되어 실시되었다. 보통 교리를 배운 다음 사백주일에 행해졌다. 이 때 촛불행렬 등 장엄한 예식이 곁들여진다. 새 교회법에는 영성체에 대한 열망과 지식을 갖출 나이인 만 8세 이상의 나이가 되면 적절한 교육을 시킨 뒤 행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망의 위험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배려할 수도 있다. 

 

 

 

 

3. 감상

 

 

- 천주교 신자로서의 첫영성체의 기억: 떨림과 흥분, 감격

 


 앞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첫영성체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물론 나이가 되었다고 하여 무조건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세례성사를 받은 상태에서 첫 고해와 첫영성체를 위한 ‘교리교실’을 몇 주간 다닌 뒤에, 교리에 관한 시험도 치르게 하여 그 시험에 통과한 ‘준비된’ 아이들에게만 첫영성체를 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졌다. 본 졸고의 저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고,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매주 주일학교에 나가기도 하였는데, 어린이미사(유치부와 초등부를 위한 미사)에서 영성체 예식 때 제대 앞으로 나가 신부님께 동그란 밀떡을 받아먹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아서 눈을 감고 기도하는 고학년 형 누나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매우 불경하고 외람된 표현이지만, ‘저건 도대체 무슨 맛일까?’라는 궁금증이 가장 컸었고, ‘나도 먹어보고 싶다.’라든가 ‘진짜 몸의 맛이 날까’, ‘받아먹고 들어와서 다들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이 성스러워 보이지만 몸을 먹는다니 뭔가 징그러워’ 등등,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첫영성체를 하기 위한 자격을 모두 얻은 뒤에 마침내 궁금증을 풀었던 날의 떨림과 흥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성당에서 받았던 몇 주간의 교리 교육이 매우 효과적이었는지,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셨다는 감격에 어린 나이였음에도 ‘신앙적 측면에서 한층 성숙해졌으니 이제 성당에 더 열심히 다녀야 해’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자가 다녔던 성당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영성체 예식에서는 (옆의 사진에서와 같이) 아 하고 입을 벌리고 혀를 약간 내밀면 그 위에 신부님께서 성체를 직접 주셨고, 중학생 나이 이상부터 성인 신자들은 양손을 포개어 앞으로 내밀면 신부님께서 손에다가 주셨다. 손에다가 받은 신자들은 옆으로 한 걸음 가서 입에다 넣은 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주 어릴 때는 어머니께 “그것 몰래 숨겨 와서 나도 한 번만 먹어보게 해 달라”고 졸랐다가 혼났던 기억도 있는데, 도대체 그게 무엇이라고 그렇게 꼭꼭 숨기고 혼자만 잡수시나 하는 마음에 어머니가 밉기도 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성체는 미사의 전체 예식들 중에 가장 거룩하고 신비로운 대상이며 경건히 받들어 모셔야 하는 대상이며 예수 그 자체인데 그걸 혼자만 먹지 말고 나도 좀 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매번 같은 말로 타일러야 하는 어머니께서도 고생깨나 하셨을 것 같다.

 

 

 

앞서 살펴보았듯, 천주교의 성체성사 즉 영성체 예식은 ‘빵(그리고 포도주)을 나누어먹는 행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예수와의 일치를 이루는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더 나아가 빵을 나누어먹은 신자들 상호간에도 일치를 이루며 사랑 안에서 모두 하나가 되는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천주교 신자로서 오랫동안 교리 교육을 받아왔었음에도 이번 졸고를 작성하기 위해 참고서적들을 찾아보고서야 이러한 내용을 새로이 알게 되었는데, 다른 종교들의 교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기에 아래에서 그들을 서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세계종교입문> 수업내용과 강의록에 따르면, 힌두교는 “타트 트밤 아시 tat tvam asi”라고 하여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하나이고 형이상학적 실재와 개별적 자아(참된 자아)는 서로 다르지 않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실재가 각 개체에 내재화되어 있어 서로 같으므로 각 개체들끼리도 결국은 서로 같으며, 결국 개체성을 초월하여 동일한 존재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불교의 화엄종에서는 이(理)법계(=空)와 사(事)법계(=假)가 존재하지만 현상세계에서의 가와 공은 각각 상통하고 결국 모든 존재가 상통한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본질과 현상은 서로서로 똑같이 상통하고 있다(=상즉상입(相卽相入))는 것이다. 이제 다시 천주교의 영성체 예식을 생각해 본다. 천주교의 교리에 따르면 예수의 몸으로 변화한 빵을 나누어 먹는 의식을 행함으로써 신자 개개인은 예수와 일치되는 경험을 하게 되며, 결국 빵을 나누어먹은 모두가 예수와 같아졌으니 신자들끼리도 일치하고 예수의 사랑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살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따라서 세 종교의 교리나 의례에서는 모두 “현상계의 존재들끼리는 서로 상통하며, 구별되는 개개의 존재가 아니고 모두가 결국 하나와 같다.”라는 비슷한 의식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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