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15. 07:38ㆍ카테고리 없음
2)오늘날의 유월절 의례
오늘날의 세더 행사에서는 집안의 연장자인 남자가 세더의 주인이 되어 그 날을 성스럽게 하기 위해 첫 포도주를 바침으로써 저녁 식사를 시작한다. 이어 카뒤쉬가 낭독되는데, 이에는 신이 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과 모든 민족들 가운데 유대인들을 선택해서 십계를 줌으로서 그들을 성스럽게 했다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후 연장자는 접시에서 정강이뼈와 달걀을 들어내면서 선언한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이집트에서 먹었던 가난의 음식이다. 배가 고픈 자는 누구든 와서 먹게 하라. 누구든 원하는 자는 이 축제에 오라. 올해 우리는 여기에 있다. 내년에도 이곳 이스라엘의 땅에 있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는 노예지만, 내년에는 자유민들일 것이다.’
세더는 유대인들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고, 그들이 과거에 겪었던 고난을 회상시켜주며, 의례의 음식과 행동의 의미를 배우게 하는 행사이다. 이 행사는 가장 어린 남자 아이가 이 의례에 대해 여러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부모는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각각의 상징을 설명한다. ‘마짜를 먹는 이유는 선조들이 이집트에서 급히 탈출할 때 아직 빵의 반죽이 부풀기도 전에 급히 나와야 했기 때문이며, 쓴 허브를 먹는 이유는 이집트에서 선조들이 겪었던 고난을 상기하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적당한 때에 음식의 상징들도 설명한다. 땅콩, 과일, 포도주로 만든 크림 하로셋은 유대인들이 노예로 살 때 벽돌 사이를 발랐던 반죽을 상징하고 식초 혹은 소금물은 고통의 눈물을 상징하며, 구운 정강이뼈와 바싹 익힌 달걀은 희생양을 상징한다.
4. 한국의 명절과 유월절 의례의 성격 비교
추석과 설로 대표되는 한국의 명절과 유대인의 유월절 의례는 모두 그 사회의 전통과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후대로 전승하는 기능을 통해 사회를 유지 및 존속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우리의 추석의 경우 본디 추수에 감사하며 조상께 예를 표하는 명절이고, 설의 경우도 새해를 축하하며 한해의 안녕을 빌며 조상께 인사를 올리는 명절이었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의 이미지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즉, 명절이라는 의례를 통하여 가족을 중시하는 전통적, 유교적 가치를 후대로 전승하면서 사회의 통합과 유지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또한 명절에 행하는 차례나 세배 등의 행동을 통해 조상과 웃어른을 공경하는 것을 중시했던 전통적인 가치를 교육한다.
유월절 의례도 마찬가지로 세더라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문답과 음식의 상징들을 통해 민족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유대 사회에서 중요시 하는 신앙 등의 여러 가치를 후대로 전승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현대 사회의 한국의 명절과 유대인의 유월절 의례 모두 발생적으로 수행했던 본래의 기능은 약화되거나 변화되었지만,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중시했던 여러 가치들을 후대로 하여금 잃어버리지 않게 함으로써 사회와 공동체를 유지, 존속시키는 의례적 기능이 더욱 강화되고 중요시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 시사점 및 앞으로의 발전 방향
요즘 명절을 즈음해서 뉴스를 보면,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이다. 의식의 변화에 따라 명절의 모습 또한 많이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명절에 과도한 가사 노동을 담당해야 하는 여성의 역할이 잔존하고 있음을 부정하긴 힘들다. 또한 제사나 차례를 행함에 있어서도 남성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반면 여성은 제사에 필요한 각종 준비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국한되어 남성에 비해 제한된 역할만을 담당한다.
유월절 의례의 세더 또한 남성이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의례이다. 유대인 사회에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세더를 여성 중심의 의례로 바꿔놓기도 하였다. 여성 중심으로 재편된 세더 의례는 여성에게 권한을 부여하는 주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세더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하는 행동을 통해 ‘왜 오늘밤 어머니들이 고통을 받나요? 그건 어머니들은 의례를 하지 못하고 의례 준비만 해야 했기 때문이지.’ ‘왜 오늘밤 이렇게 기대는 건가요? 그건 미리암의 업적에 대해 느긋하게 말하기 위해서란다.’ 와 같이 어머니가 어머니가 아닌 아버지로 읽혀지는 하가다 - 이스라엘의 굴욕으로 시작해서 귀향과 성전 개전이라는 영광으로 끝맺는, 이집트 탈출에 대한 자세한 기록. 세더 행사 때 읽혀진다. - 의 환상을 폭로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의례나 제의에 있어 여성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신라에서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고려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남성과 여성, 혹은 장남과 차남을 가리지 않고 형제들이 한번씩 돌아가면서 부모의 제사를 모시는 윤제가 일반적인 형태였으며, 당시 사회에서 부모의 제사를 모시는 것은 자식으로서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도리 및 의무였기에, 그에 따라 재산의 상속 등 자식으로서의 권리도 동일하였다. 문화라는 것은 일거에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모습은 조선시대까지도 그 관습이 없어지지 않고 지속되었다.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는 남존여비라는 말로 대표되는 남성중심의 의례의 모습은 조선 후기인 18세기 중엽 이후에나 일반 사회에 정착되었다. 즉, 다시 말해 우리가 조선 사회의 모습 혹은 전통 사회의 모습이라고 알고 있는 이미지는 실제로 우리 민족의 장구한 역사 동안 근래 약 200년 정도 밖에 존재하지 않았던 모습이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의례가 수행하는 기능 중 사회를 통합 및 유지, 존속시키는 기능이 날로 그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의례에서 그 주최자와 주요 참여자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여성들도 지위와 함께 부가된 의무 또한 성실히 수행한다면 의례가 가지는 이념적 의례의 순기능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그것이 진실로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전통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