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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세종입 우리나라의 초례 2

우음미 2016. 4. 18.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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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에서의 초례)

초례청(醮禮廳)이라고 하는 용어를 보면 결혼식 자체가 하나의 초례행사임을 알 수 있게 한

다. 신랑과 신부가 서로 절하며 술을 주고받는 의미도 알고 보면 천지신명에게 그들의 행복

을 비는 종교적 성격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인생의 새출발을 경건하게 축복하는 의례

에서 초례상 앞에 술을 사용하는 것은 서로가 술을 교환하는 의미라기보다는 천지신명에

게 인생의 새출발을 축원하는 종교적 의례로서의 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3. 정리와 감상


 초제, 소격서라는 단어는 국사를 배운 본인에게는 이미 친숙한 단어였고, 국사를 배우지 않

은 사람이라도 도교행사라는 막연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수박 겉

핡기식 지식은 초례라는 행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심지어는 왜곡

하여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초제와 초례에 대해 넓은 폭에서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해가며 조사하면서 가장 곤란하였던 것은 초제와 초례의 정의였다. ‘초제는 

성신에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며 , 그 동의어로 초례가 있는데 관혼상제에서의 초례는 술을

주고받는 대례의 한 절차이며 …. ’ 등의 여러 내용이 뒤얽혀 있어 초제와 초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생각을 바꿔 조선시대 의례에 대한 전체적인 조사

를 한 이후 초례가 조선시대의 보통 유교적인 의례와는 달리 도교에 가까운 의례 중 하나

이며, 초례에는 국가적인 차원과 민간적인 차원이 있어 민간적인 차원에서 조선시대에 행

해진 것이 관혼상제의 초례라는 개념을 확실히 잡게 되었다. 초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초례를 일컫는 말이다.



 

 이렇게 초제와 초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나가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인위적인 구분, 즉

언어로 분절한 개념이 실제 사실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도가 사상과 도교를 사람들이 흔히 혼동하는 것인데, 이와 비슷한 현상을 조사를 진

행하면서 겪었다. 필자는 초례가 ‘도교적’ 의례라는 것을 막연히 초례가 도교에 ‘속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정확하지 않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강의에서도 언급된 적

이 있지만), 노자가 도교에서 신격화되었다고 해서 노자의 철학이 도교라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성수(星宿)에 대한 민간신앙도 도교에 의해 수용되지만, 그것은 도교신앙 이전에

존재했던 것이다. 즉 초례는 도교적인 행사지만 기복을 위해 성수에 대한 의식을 치렀던 것 

이 근본적으로 도교에서 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주목할 것은 한국의 불교에도 성수신앙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칠성

(七星)을 봉안하는 칠성신앙이 그것이 된다. 현대에서도 재앙을 막고 축복을 구했던 종교적

심성은 다른 형태의 종교로 계승되고 있다. 이러한 신앙과 의식들을 하나로 묶어 ‘도교의례’

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음이 확실하다. 유교로 대표되는 조선시대에 초례가 꾸준히 행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분적, 분절적인 구분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며 ‘장수와 건강을

빈다‘ 라는 개념이 ‘=도교’ 로 치환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실 초례라는 단어는 아주 포괄적인 개념이다. 초례의 대상이 되는 별들과 그 의미에 

따라 오성(五星 : 화성,토성,금성,수성,목성)과 열수(列宿 : 28수)에 대한 제사, 북두칠성에

대한 제사, 그리고 형이상학적인 신앙의 대상인 삼청(三淸)과 상제(上帝)에 대한 제사로

세분화시킬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시대적인 구분을 적용하여 소격서와

소격전, 삼청전과 성제정 같이 초례를 지냈던 관서와 관련하여 더 자세한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할당된 분량 2쪽에서 초례의 개념을 전반적으로 다루기 위하여 위와 같은 구분을

부득이하게 생략하게 된 것이 초례를 소개하는 이 글에서 가장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별에 장수와 안녕을 기원하는 초례. 현대에서는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약을 사용하

여 장수와 안녕을 바라며, 하늘의 별이 단순한 가스와 돌덩어리의 집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유성을 보면 소원을 빌고 별자리점을 친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기대고 바라면서 그것을 자기 자신을 유지해 나가는 받침대로 

이용하는 인간의 본성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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