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유교 제례 1
1. 유교 제례의 의미와 구조
1-1. 유교 제례의 의미와 기능
「예기」에는 사람의 다스리는 도에는 ‘예’보다 급한 것이 없으며, ‘예’에는 다섯가지 기준이 있는데, ‘제사’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즉 ‘예’는 유교의 중요 키워드인데, 여기서 특히 졔례가 예의 실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파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때 유교에서의 제례는 모든 ‘신’ 존재에 드려지는 것으로, 그 안에는 궁극존재인 ‘천(天)’을 비롯하여, 지(地), 산(山), 림(林) 등의 자연사물, 선현 , 군왕 그리고 작게는 각 가정의 조상까지가 모두 포함된다. 「중용」에서는 “귀신의 덕은 성대하도다. 보아도 볼 수 없고, 들어도 들을 수 없지만, 만물의 본체가 되어 빠뜨릴 수 없으며,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재계(齋戒) 제복(祭服)을 성대하게 차려입고 제사를 받들게 하니, 가득 차서 위에 있는 것 같고 좌우에 있는 것 같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사를 받들도록 하는 주체가 ‘신’이며 제사가 ’신‘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게 해준다. 사람들은 먼저 기본적으로 가정제례를 통해 그 본인의 조상에 보답하며, 만물의 조상은 모두 천, 상제에 근본하므로 궁극적으로 제사는 인간이 자기 생명의 근원에 보답하는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제사를 통해 신과 만날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여러 신들은 최고의 신인 ’천, 상제‘의 아래 질서 있게 자리 잡은 존재들이므로 인간은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통해 천, 상제를 정점으로 하는 신의세계와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제례는 신에 대한 보답과, 인간과 신의 세계와의 소통을 그 기저에 두고 오랜 세월을 동안 유교 문화권에서 의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역할하여 왔다. 따라서 문화권내에서 사회적인, 현실적인 영향을 미치는 많은 기능들도 수행했고, 그중 특히 부계 친족의 결속, 강화와 재확인, 그리고 그를 통한 질서의 수립이라는 의미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조상의 혈통적 정통성을 계승한 종자를 중심으로 혈통조직을 계승해나가는 원칙, ‘종법(宗法)’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구조를 추구하는 유교 안에서 제례는 조상과 산 사람을 이어주고 그 계보를 확인케 해줌으로써 유교적 사회구조의 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관혼상제의 4가지 의례 중 관례, 혼례, 상례는 모두 일회적인 의례인데 비해 매년 주기적으로 행해지는 제례는 그때마다 종손을 중심으로 한 직계, 방계, 항렬 등에 따른 종법적 위계질서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는데, 이는 가정 내의 혈통적 질서를 형성시키고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동시에 모두가 그 혈통의 자손임을 일깨워주어 같은 혈통을 후손들을 통합시켜주는 구심점으로 작용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질서의 수립이라는 제례의 기능은 가정 내에서만 머물지 않았다. 유교는 상하, 귀천, 존비, 장유 등을 구별하고 모든 우주 만물에 각자의 자리가 정해져있음을 강조하였고 제례는 이러한 구별의 원리를 잘 구현하고 있는 의식이었다. 제사의 대상인 신들의 세계 역시 ‘천’ 아래 위계적으로 질서 잡혀 있음은 물론이었고 ‘천’에 대한 제사는 천자만이, 토지의 ‘신’과 사직에는 천자와 제후만이. 공자의 제사는 문묘에서만이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또한 제사의 제물은 그 제사의 주체가 군주인지, 제후인지 대부인지, 일반 백성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졌으며 몇 대 이상의 조상까지 제사지낼 수 있는지도 신분에 따라 구별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제사가 유교적 신분질서를 정립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렇듯 가정 내에서, 사회적으로 질서유지의 기능을 하고, 더 나아가 종법질서에 기반한 사회건설이라는 유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적 의미로의 제례는 처음에 언급한 것 같은 신과 인간의 소통과 근원에 대한 보답이라는 의미를 통해 신성성, 정당성을 얻어서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수용될 수 있었다. 즉 제례는 신성화된 의례로서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자의적 경계를 정당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개인을 당시 유교의 이념에 적응시키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으며,
유교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의 원활한 수행 아래에서 유교의 종교성이 그 뿌리를 지탱시켜주고 있었던 것이다.
1-2. 제례의 구체적 모습과 구조
제례의 구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때, 여기서는 먼저 큰 틀에서 제례의 형태를 간단히 언급한 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가정에서의 조상신 제사에 초점을 맞추어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제례는 크게 제사가 드려지는 대상에 따라 장소, 방법, 시기가 달라진다. 「주례」에는 크게 천신(天神) 중 호천 상제에게 드리는 인사(禋祀), 지기(地祇) 중 사직에게 드리는 혈제(血祭)와 인귀에게 드리는 제사 등을 구분하고 천신이나 지기의 종류에 따른 다양한 명칭을 구분하고 있다. 그리고 제사는 그 구성에 있어서 제사 대상인 신위(神位), 제사를 드리는 인간인 제관(祭官)이 기본적인 축을 이루고 있으며 신에 따라 달라지는 제사의 장소와(제장) 시기(제가) 제사의 실행적 측면에서 제물과 제의의 절차가 그 나머지 요소를 이루고 있다.
그러한 구조 안에서 제사의 진행 순서를 조상신 제사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체로 준비과정, 본 과정, 마침과정의 3단계의 순서로 이루어지는데, 먼저 준비과정에는 제사를 드리기 전 제관이 마음의 준비를 하는 재계가 그 처음을 차지하고 있다. 재계를 통해 후손들이 흐트러진 마음을 가다듬고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갖춰야만 조상의 모습을 바로 느낄 수 있다고 믿고 이를 위한 과정이 제례의 처음을 차지한다는 것은 제례의식에서 조상과의 만남과 소통의 의미가 그만큼 핵심적인 것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재계가 끝나면 그 해 처음 수확된 것으로 정성스럽게 제물을 준비하는 진설을 행한 다음 본 과정으로 넘어가는데 제사의 본과정은 하늘의 신혼을 부르는 영신으로 시작하여 제상위에 제물을 올리는 진찬, 가정의 연장자 순서대로 술잔을 올리는 헌작으로 이어고, 신이 제물을 받는 흠향에 이른다.
흠향 역시 신이 제물을 받아들이는, 조상신과 인간을 단절된 존재가 아닌 연속적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로, 제례에서 가장 중시하는 절차로 여겨지고 있다. 그 다음 흠향을 끝낸 신이 복을 하사하는 강복, 신이 흠향하고 강복한 제물을 제관이 돌려받는 음복 순으로 본 과정은 총 6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마침과정은 신주를 사당에 돌려놓고 제기와 제물을 제상에서 물리는 납주, 축문이나 지방을 불살라 하늘에 올리고 재는 땅에 묻는 망료, 그리고 제사의 본 과정에서 제주만이 음복을 한 것과 달리 제주를 비롯한 모든 제사 참여자가 신의 강복을 받은 제물을 나눠먹는 분준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끝으로 제사는 마무리 된다. 현재 가정에서 행해지는 명절이나 기일의 여러 가지 제사 의식 중 사람들이 비중을 제일 많이 두는 것은 기제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본래 기제사는 4대의 조상의 제사에 한정되어 행하는 제사(4대봉사)인데 반해 현재에는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외에도 역사적인 계기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신주나 사당도 대부분 소멸되었으며 제사의 시간대나 구체적 제사의 절차도 전통적인 양식과는 다르게 변형되고, 간소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